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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탐구생활-인도

인도의 자부심으로 물든 무사의 도시, 조드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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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도시가 파란 색인 블루시티, 인도의 조드푸르"
 


올해 초 개봉해 화려한 색감과 미장센으로 호평 받은 판타지 영화 <더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보면 모든 건물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환상의 도시가 등장한다. 상상의 세계를 그려낸 영화이니만큼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어 창조된 화면일 것 같지만 영화 속의 푸른 도시는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곳이다. 바로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 지방에 위치한 '조드푸르'란 도시가 그곳. 감독인 타셈 싱은 "조드푸르에서 찍은 모든 장면은 일체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치 코발트블루의 바다가 연상되는 '블루시티' 조드푸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왜 모든 건물들을 파란색으로 칠한 걸까?



도시의 파란색은 시바의 피부빛


블루시티 조드푸르의 근원을 밝히려면 인도의 가장 오래된 문헌이자 힌두교 경전 중 하나인 '리그베다'를 들춰봐야 한다.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든 이 경전에는 우주의 탄생과정과 힌두교의 여러 신들에 대한 찬사가 서사시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의 탄생신화가 흥미롭다. 까마득한 태곳적, 우주가 탄생할 때 온 우주를 파괴하고 남을 만큼의 엄청난 맹독이 등장했다고 한다. 독이 담긴 구체가 터지려는 찰나, 시바가 독을 삼켰고 독은 그의 몸속에서 터지고 말았다. 그 덕분에 우주는 무사했지만 독에 중독된 시바는 온몸이 파랗게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시바는 인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신이 되었고, 파란색은 시바를 상징하는 색깔이 되었다. 조드푸르는 다종교 국가인 인도에서도 힌두교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도시 중 하나. 기원전부터 시바를 모시는 사제이자 힌두 카스트의 최상위계층인 '브라만'이 그 권위와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자신들의 집에 파란색 안료를 칠하면서 도시는 점차 파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9~10세기 무렵 브라만에 이어 조드푸르의 지배세력을 형성한 무사계층 '라즈푸트' 역시 그들의 집을 파란색으로 칠하면서 파란색은 오랜 세월 이 지역 지배계층 고유의 권위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매김한다.


세월이 흘러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사실상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당시 560여개에 달하던 번왕국들(지방 왕조)은 인도 연방에 통합되는데 조드푸르를 지배하던 라즈푸트 왕조도 그 힘을 상실한다. 동시에 파란색 역시 지배계층만이 가질 수 있는 색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아니, 더 이상 지배계층이 파란색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새롭게 파란색에 집착한 이들은 그간 파란색을 갖지 못했던 서민들. 앞다투어 집을 파란색으로 칠하면서 조드푸르는 지금처럼 온도시가 파란빛으로 물들게 되었다.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파란색 안료


<더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만든 타셈 싱 감독이 조드푸르 주민들에게 제공한 촬영협조의 대가는 최고급 파란색 페인트였다. 여전히 가난한 서민들에게 집 한 채를 칠할 수 있는 페인트 제공은 꽤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값싼 합성 페인트가 개발된 요즘도 이럴지 언데 안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먼 옛날은 오죽했겠으랴. 브라만과 라즈푸트가 자신들의 집을 파란색으로 칠하던 당시 파란색 안료는 인도는 물론 세계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황색이나 적색, 흑색의 안료는 일상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었던 반면, 파란색 안료는 채굴하기 힘들었던 코발트나 청금석에서만 추출할 수 있었다.


특히 '라피스라줄리'라는 보석으로 알려진 청금석은 파란색을 내는 재료 중 으뜸으로 치는 광물이다.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가 13세기 후반 청금석의 주산지인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를 여행했을 당시 청금석을 보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파란색"이라 찬사를 보냈을 정도. 청금석은 또한 공기와 물에 산화되지 않는 특성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색하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청금석을 정련해 얻어낸 안료는 청색 계열 중 으뜸으로 치는 '울트라마린'으로 20세기 초 화학적 합성으로 인공적인 안료를 얻어내기 전까지 금과 같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런 값비싼 울트라마린 안료를 구하기 위해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 화가들은 저마다 든든한 재력가를 후원자로 뒀을 정도였다고 하니 청금석이 얼마나 귀한 광물인지 짐작할 만 하다.


브라만과 라즈푸트가 조드푸르를 다스리던 시절, 그토록 희귀하고 값비싼 파란 안료를 집 한 채를 칠할 만큼 구입할 수 있는 서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조드푸르에서 파란 집을 갖는다는 것은 종교적, 신분적 상징 뿐 아니라 재력의 과시기도 했다.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자부심의 색깔


색(色)은 분명 자연적 현상이지만 색의 상징성이나 기호는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다고 한다. <블루, 색의 역사>의 저자이자, 색채학의 권위자인 미셸 파스투로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들이 본래부터 좋아하는 색, 싫어하는 색은 없다. 색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사회적 현상”이라고 밝힌바 있다. 색에 대한 느낌이 역사 속에서,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른 이유다.


조드푸르 사람들에게 영겁의 시간동안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던 파란색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닌 색일까. 이제는 더 이상 부자가 아니더라도, 귀족이 아니더라도 페인트 살 돈만 있다면 누구나 칠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색이 되었지만 왜 그들은 여전히 파란색을 집에 칠하는 것일까? ‘블루시티’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주 정부에서 집을 파란색으로 칠하기를 권장하고 있다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중세부터 조드푸르를 지배했던 라즈푸트는 인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강력한 무사들이었다. 16세기 초 인도를 통일한 무굴제국조차 조드푸르가 속한 라자스탄 주만큼은 굴복시키지 못했을 만큼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1459년 조드푸르의 중심부에 축조된 메랑가르성은 그런 용맹함의 결정체. 125m 높이의 바위산에 세워진 이 웅장한 석조건축물은 적의 침입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은 막강요새다. 그렇게 한 번도 전투에서 진적이 없었던 라즈푸트의 상징인 파란색은 용맹과 자주성, 그리고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조드푸르를 채운 파란색은 그런 귀족계층의 퇴색한 자부심의 상징이자, 동시에 오랫동안 파란색을 갖지 못했던 서민들의 반대급부적인 욕망의 상징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빛바랜 욕망의 발현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 메랑가르성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푸른빛 넘실대는 도시의 모습은 너무도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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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루박멸탐구생활 우쓰라(http://woosr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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