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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탐구생활-베스트

연기에 영혼을 바친 남자, 다니엘 데이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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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영혼을 바친 남자,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든 것"


작년, 80돌을 맞이한 오스카는 2008년 최고의 남자배우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선택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 리 존스나 <스위니 토드>의 조니 뎁이 되었어도 “그럴만했겠다” 수긍했었겠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만큼은 의문의 부호를 달 여지조차 없었다.

이미 1990년 <나의 왼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지만 그는 진정 두번, 아니 세번 네번을 받아도 지나칠 게 없는 남자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접게 한 크리스티 브라운을 연기했던 <나의 왼발>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바람둥이’ 토마스를 연기했던 <프라하의 봄>에서, 오리지널보다 더 오리지널 같은 인디언 ‘호크아이’를 연기했던 <라스트 모히칸>에서, 시대적 광풍의 희생양이 되는 아일랜드 청년 ‘제리 콘론’을 연기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그는 작년의 수상에서처럼 남우주연상을 받기에 모자람 없는 명연기를 펼쳤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그는 석유를 캐기 위해서라면 똥통에라도 들어갈 수 있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명연기를 펼쳤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로 걸작의 보증수표임을 확증한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감독을 하기도 했고, 원작 소설인 업톤 싱클레어의 <오일>이 워낙 탄탄한 스토리란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가장 큰 힘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다. 인간미는 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초라한 은광 광부가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석유재벌로 변하는가에 대한, 어쩌면 꽤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굵직하게 빛나게 한 건 순전히 그의 공이었다.(감독의 역량만 두고 볼 때 작년 오스카는 결과적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코언 형제의 손을 들어줬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두 번째 오스카를 안겨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한 장면.


사실 최근 10년을 돌이켜 보면 그가 출연한 영화는 고작 4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다년간 영화를 위해 충전한 에너지를 철.저.하.게 영화에 바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감방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찍으면서는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에 아예 텐트까지 쳐놓고 살면서 연기를 했다던, 말 그대로 ‘연기에 영혼을 바친 남자’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렇게 연기에 영혼을 바친 남자가 <시카고>의 롭 마샬 감독과 니콜 키드만, 페넬로페 크루즈, 케이트 허드슨 등 쟁쟁한 여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 뮤지컬 영화 <나인>을 촬영하고 있다니 어찌 기대가 아니 될 수가...^^ 올해 말 개봉이라는데 정말이지 목하 기대 중이다. 그럼 올 연말 그의 명품연기에 목마른 수많은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그리고 자타가 공인한 이 배우의 영화 인생을 한 번 되짚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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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1985)>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  출연: 새드 제프리,
로산 세스,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


1957년, 영국 런던에서 계관시인이었던 아버지와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천생 배우의 피를 타고 났었는지 모른다. 13살 때부터 이미 연극 무대에 섰던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새기게 해 준 작품은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영국의 이민자 집단, 특히 파키스탄인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그로 인한 갈등, 그리고 고민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받는 드라마다. 당시 보수적이면서 우파적이었던 마가렛 대처 정권에서의 사회 분위기는 젊은 이민자 2세들에게 고단한 편견의 연속이자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시켰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주인공 격인 이민 2세 오마르와 동성애를 펼치는 영국 청년 죠니로 분한다.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일원이지만 진솔한 사랑과 인권 앞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젊은 청년의 자화상을 그는 이미 원숙한 연기로 승화화해 낸다. 이때부터 그의 상복이 시작되는데 이 영화로 그는 제51회 뉴욕 비평가 협의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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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 (1988)>
감독: 필립 카우프만 / 원작: 밀란 쿤테라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줄리엣 비노쉬, 레나 올린 등


사실 이 영화를 사춘기 시절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빌려 본 기억이 있다. 물론 줄리엣 비노쉬와 레나 올린의 올 누드를 질리게 볼 수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뭔가 공명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었던 영화다. 밀란 쿤테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968년 체코의 자유화 개혁과 소련의 침공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이야기다. 영화의 등장인물에게 ‘프라하의 봄’은 너무나 짧았고 한없이 가벼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에게 부닥친 현실은 너무나 길고 무겁다. 이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인생을 가볍게 살려고 하는 바람둥이 토마스를 연기한다. 이즈음 그는 이미 연기 뿐 아니라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을 고르는 눈까지 갖게 된 듯 하다. 아니, 필립 카우프만을 비롯한 명장들의 눈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콕 박히게 된 시점이었다는 게 더 정확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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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 (1989)>
감독: 짐 쉐리단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레이 맥아널리, 브렌다 프리커 등


이토록 소름끼치는 연기가 있을까? 아니 원래부터 장애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크리스티의 모습을 연기라 할 수 있을까? 스크린 속에서의 크리스티는 100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다니엘이 아니라 진짜 크리스티였다. 뇌성마비로 온몸이 뒤틀려 왼발가락 밖에 쓸 수 없는 장애인 크리스티. 곁가지 없이 관객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도 정상인과 같은, 정상인보다 더 강인한 열정과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게 해 준 힘은 오로지 다니엘의 소름끼치는 연기다. 순전히 그의 연기력만으로 <나의 왼발>은 20년 동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교훈적인 영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분명 캠페인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도 말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로 생애 첫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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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모히칸 (1992)>
감독: 마이클 만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매들린 스토우, 조디 메이 등


<나의 왼발>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뉴저지의 미소>란 영화를 찍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 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마이클 만이라는 흥행 감독과 작업을 하게 된다. 인디언의 손에 키워진 백인인 ‘호크아이’를 연기하는데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마치 종이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던 포스터는 90년대 카페의 장식용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더랬다. 서구인들에게 몰려 퇴락하는 인디언들의 마지막 모습을 잘 담아내기도 했지만 마이클 만 감독은 이 영화를 전형적인 액션 멜로물로 만들었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드라마 뿐 아니라 액션 연기도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 그의 연인으로 나오는 매들린 스토우가 절정의 미모를 뽐낸 영화로도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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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
감독: 짐 쉐리단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엠마 톰슨 등


남자 영화 팬들에게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로 가장 각인되어 있을 듯 하다. 영국으로부터 핍박받는 1970년대 아일랜드의 사회적 혼돈을 잘 담았을 뿐더러 남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애끓는 정을 제대로 묘사한 수작이니 말이다. 무고하게 15년을 복역한 아일랜드 젊은이 제리 콘론의 분노와 투쟁도 인상 깊었지만 아버지인 조세프 콘론과의 기나긴 오해와 화해의 과정이 가슴에 더 콕 박힌다.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영화를 보고 나서 고향의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나의 왼발>의 짐 쉐리단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강력한 아카데미 남우주연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아쉽게도 그해 오스카의 영광은 <필라델피아>의 톰 행크스에게 돌아갔다.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또 주기엔 텀이 너무 짧았던 걸까.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의 그의 연기는 <나의 왼발>의 그것과 필적할 만큼 강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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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복서 (1997)>
감독: 짐 쉐리단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에밀리 왓슨 등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후 선택한 <크루서블>에서 전작에 비해선 조금 실망스런 결과를 받은 그는 다시 짐 쉐리단과 아일랜드의 품으로 돌아간다. 영국 런던 태생인 그가 뼛속까지 아일랜드인 짐 쉐리단과 영화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독특하다. 이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아일랜드의 복싱 영웅 대니 플린을 연기한다. 짐 쉐리단 감독은 영화 속에서 참피온으로서 안주할 수 있던 그를 영국에 대항하는 ‘IRA(아일랜드공화국군)’에 가입시키고 14년이라는 징역생활을 하도록 설정하는데 그게 무리수였을까. 웬만한 복싱영화들에서보다 훨씬 빛나는 시퀀스를 보여줬던, 복서로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명연기가 주제 의식에 묻히는 감이 있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짐 쉐리단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상복이 거의 없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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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 (2002)>
감독: 마틴 스콜세지 /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카메론 디아즈 등


<더 복서> 이후 5년 가까이 긴 휴식을 취하던 그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 중의 거장의 영화를 선택한다. 당시 청춘스타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중이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합을 맞추며 베테랑 연기자의 진수를 보여줬다. 아마 디카프리오에게 그와 같이 연기의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변환점이었으리라. 격투신에서 디카프리오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채로 연기에 몰두하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디카프리오는 빚을 진 셈. 걸출한 거물들이 모여 1840년대의 뉴욕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이 영화는 수많은 상을 받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아카데미만 빼고 각종 영화시상식에서 무려 5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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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 (2007)>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케빈 J.오코너


2005년 <발라드 오브 잭 앤 로즈>에서 딸에 대한 애틋한 부정을 연기한 그는 50줄에 접어들며 나이에 걸맞는 역을 선택한다. 이제는 어느덧 거장으로써 연배가 까마득한 후배 감독(폴 토마스 앤더슨은 1970년생)과 작업하게 된 그의 나이만큼이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연륜이 가득한 연기를 선보인다. 스틸이나 포스터만으로는 도저히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은 큰 콧수염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맡은 역에 완벽히 몰입한 덕분일 게다. 그가 연기한 인물 중 진짜처럼 안 보였던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었겠냐만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석유왕 다니엘 플레인뷰는 영락없는 1900년대 초반을 살고 있는 비정하고 거친 남자다. 그런 다니엘 플레인뷰는 결국 18년 만에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의 영광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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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2009)>
감독: 롭 마샬 /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니콜 키드만 외


오스카 수상 이후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진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다음으로 선택한 영화는 뮤지컬 영화. 이미 전작 <시카고>에서 뮤지컬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롭 마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감독과 남자주연배우의 명성만으로도 초기대가 되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와 함께 공연을 펼칠 여자배우들의 면면! 이름만 들어도 맘이 설레는 니콜 키드만과 페넬로페 크루즈에다 케이트 허드슨, 스테이시 퍼거슨 등 미모와 연기를 겸비한 여배우들이 그와 어떤 연기를 보여줄 지 기대되는데... 심지어 전설적인 명배우 소피아 로렌까지 출연한다니...+ㅅ+ 이 영화야말로 올해 하반기 최고의 메가톤급 블록버스터다. 정말 최고의 명품 연기를 보여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을 목하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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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루박멸탐구생활 우쓰라씨 | 스틸 및 사진 출처 : 영화사 제공 홍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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