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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탐구생활-추천만화

[심야식당]-출출한 야밤에 보면 큰일날 음식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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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할 자정 무렵, "소로로" 밀려오는 잠을 "스르륵" 밀어내며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아닌 밤중의 허기다. 꾹 참고 잠을 청하려 하지만 한번 찾아온 출출함은 쉬이 물러가질 않는다. 그래도 찾아온 손님이라고, 이놈이 박대를 하니 앙심을 품고 끈질기게 숙면을 방해한다. 살찌는 것도 무섭고, 아침에 얼굴 붓는 것도 무섭지만 이럴 땐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먹고 자는 게 출출함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라면은 왠지 서글프다. 메뉴의 약소함도 그렇거니와 직접 만들어먹으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이럴 때 누가 딱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만들어서 대령해주면 얼마나 좋으랴. 즐거이 야식을 먹으며 거기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화까지 반주로 걸치면 금상첨화일 텐데…. 그러나 야식 만들어달라고 곤히 자는 가족 누군가를 깨우기도 곤란하고, 그나마 깨울 이도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홀로 후루룩 라면을 먹다 보면 외로움에 목이 멘다. 이럴 때 집 가까운 곳에 심야식당이라도 하나 있으면 후다닥 뛰어가서 먹고 올 텐데 밤 12시에 영업하는 '밥집'이 있을 리야 만무하지.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深夜食堂)]은 이렇듯 밤에 출출한 경험을 많이 겪은 사람이라면 단골식당으로 삼을만한 심야식당을 소재로 한 음식 만화다. 도쿄 신주쿠의 한 골목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영업하는 심야식당에 찾아오는 평범한 서민들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내는데, 그 읽는 맛이 꽤나 담백하고 감칠난다.


까까머리에 얌생이 콧수염, 그리고 눈 옆의 수상한 흉터까지. 결코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상의 중년 남성이 운영하는 심야식당의 메뉴는 딱 한 가지. 된장국 정식 뿐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손님이 따로 먹고 싶은 걸 주문하면 주인장이 가능한 한 만들어주는 게 또 이 가게의 모토. 그래봤자, 재료가 한정되어 있어 붉은 비엔나소시지, 돈까스 덮밥, 감자 샐러드, 고기감자조림 같은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어제 만든 식은 카레나 밥에다 가다랑어포와 간장을 뿌려먹는 일명 '고양이맘마'도 이 식당에서는 어엿한 인기 메뉴다.


그러나 이런 소박하고 일상적인 메뉴 덕분에 이 식당은 언제나 단골들로 문전성시. 그리고 그 단골들에게 주인장이 만들어주는 음식들은 지난 날의 추억을 일깨워주고, 현재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앞으로의 일상에 희망을 안겨주는, 치료약의 역할을 하는데, 메뉴 하나당 하나의 에피소드를 엮어 시시콜콜하지만 공감 가는 소시민들의 일상과 사연을 읽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만화를 보는 중 자신의 경험이나 추억과 오버랩이 되는 에피소드와 음식이 나오면, 아무리 식은 카레일지언정 순간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유혹의 강도는 상상초월이다.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잔잔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심야식당]. 이런 인기의 비결은 무엇보다 작가인 아베 야로의 노련한 연출력과 묘사력에 있다. 특이하게도 41살에 데뷔(이 작품으로 일본 <소학관>의 만화주간지 "빅코믹 스피리츠"에 연재 시작)를 한 이 중년만화가는 만화 경력은 일천할지언정 40년 넘게 쟁여 논 인생 경력과 연륜을 만화 속에 녹여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간결하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수려한 펜선과 그림체는 물론, 대사를 최대한 절제하고 칸과 칸 사이의 공간감과 시간감을 조절해 물 흐르듯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출력은 갓 데뷔한(물론 중년이지만) 작가의 솜씨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


특히 음식을 즐기는 등장인물들의 만족감이나 식당의 분위기를 전달함에 있어서는 장면 장면을 절묘하게 조합해 가히 예술적이라 할 만한 '몽타주 기법'의 진수를 보여준다.(몽타주 기법에 대해 첨언하자면-만화에서 몽타주 기법이 잘 쓰인 대표적 사례는 [슬램덩크]. 버저비터와 함께 날린 슛이 들어갈까 안 들어갈까 하는 순간의 긴박감을 등장인물들 각각의 클로즈업 샷을 나열함으로서 독자들에게 그 순간 농구장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음식만화의 전형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고,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는 실용만화도 아니지만, 이런 연출력을 통해 어떤 만화보다 효과적으로 음식의 미덕과 매력을 전달한다. 


보통 음식만화 장르의 대표작을 [미스터 초밥왕]이나 [맛의 달인] 같이 요리사의 명예와 자긍심을 걸고 대결 구도를 펼치며 화려하고 기발한 음식들을 쏟아내는 만화들을 꼽는데, [심야식당]에서는 그러한 '살벌한' 갈등구도는 일체 존재하지 않으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요리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요리를 만드는 조리사 역시 쇼타-'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나 성찬이-'식객의 주인공'- 같은 절대요리내공을 쌓은 요리의 달인이 아니다.


그러나 <심야식당>에서 주인장이 만들어 주는 평범한 요리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다 맛있고, 감칠나 보이는지 만화책을 덮고 나면 참을 수 없는 식욕을 주체하기가 힘들 정도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라면 정말 이렇게 식욕을 당기게 만드는 만화를 만든 야베 야로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출출한 야밤에 보면 큰일 날 만화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만화를 보자마자 뛰쳐나갈 수 있도록 만화 속에 등장하는 심야식당이 바로 집 앞에도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심야식당] 한국판은 만화출판사 '대원 씨아이'의 임프린트인 '미우'에서 출간되었으며 현재"(2009년 8월) 3권까지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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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지루박멸탐구생활 우쓰라(http://woosr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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