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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탐구생활-베스트

20세기 공포영화 감독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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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호러거장 vs 21세기 호러신예-①

"기억해야 할 20세기의 공포영화 거장들"


최근 <불신지옥>이란 공포영화가 개봉을 했는데요. 최근 볼만한 공포영화가 없었던 한국공포영화계에 한 줄기 희망을 던져준 수작이었습니다. 제목이 정말 좀 "불신"스러워서 그렇지, 연출자인 이용주 감독의 앞으로의 행보가 정말 기대될 정도로 참신한 연출과 기법이 돋보이는 영화였지요. 이용주 감독은 뒤늦게 필모그래피를 검색해봤더니 <살인의 추억> 조연출을 담당하며, 탄탄한 연출 수업을 받았더라구요.

비록 흥행은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한국공포영화의 '금과옥조'가 될만한 작품들을 만들어주길 기대해봅니다. 사실 호러 장르만큼 잘 만든 영화가 후세의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장르도 없지요. 그래서 '롤모델'은 공포 영화의 질적양적 팽창에 무척 중요합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그런 경향은 더더욱 두드러지요. 

21세기 세계영화계의 흐름을 살펴보면, 할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몇몇 블록버스터급 공포영화들을 제외하면 비주류나 다름없었던 호러 장르가 2000년대 들어 주류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공포영화의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어쩌면 공포영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던 1970~80년대보다 더 활황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공포영화의 신성들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더 잔인하고 말초적인 자극을 바라는 관객들의 성향도 이유겠지만요.)

이런 신성들의 등장에 공포영화의 전성기 때 거장들이 만든 영화들이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현재 걸출한 호러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은 다 20세기 호러 거장들의 공포영화를 보며 자라났으니까요. 어쨌거나 한때 ‘살육과 절단이 난무하는’ 공포영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 살았던 저 같은 이에게 실력 있는 공포영화 감독들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꼭 호러마니아가 아닌 분들에게도 웰메이드 공포영화의 등장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내심 “필견! 공포영화 베스트 10” 같은 걸 만들어볼까 했으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옥같은 공포영화 중 제 주관적인 기준으로 10개를 추려내는 게 우습기도 하고 의미도 없는 듯 해 2000년을 기준으로 먼저 기억해야 할 20세기의 공포영화 감독 10인을 꼽아보았습니다.(주목해야 할 21세기의 공포영화 감독 10인은 스크롤의 압박으로 다음 기회에...-ㅅ-;) 최근 제작된 공포영화에 비하면 조잡하고 투박하지만 그 상상력과 공포만큼은 훨씬 고단수인 분들이죠.

1980~90년대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공포영화를 빌려봤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무척 반가우실 거야요. 개인적인 경험이나 선호도가 반영되지 않았다곤 볼 수 없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흥행과 평단 양면에서 인정받고 있는 감독들, 그리고 호러 장르의 패러다임을 형성하는데 일조를 했고, 일조를 할 감독들)을 적용했답니다. 아직 여름휴가를 안 가셨다면 이 리스트가 막바지 더위가 기승인 요즘, 마지막 '피서'에 도움이 되길 살짝콩 기원해 봅니다.^^




01 토브 후퍼(Tobe Hooper, 1943~)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1990년 전후, 그 당시 동년배들에게 공포영화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VTR이 보급된 지 얼마 안 되었고 막 비디오 대여점들이 생겨나던 때였는데 극장에서는 몰라도 비디오 대여점에서만큼은 공포영화가 인기였고 그 종수도 압도적으로 많았더랬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1970~80년대 세계적으로 공포영화의 붐이 일었고 저예산으로 마구 제작된 공포영화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저 같은 세대가 그 덕을 몇 년 뒤에 비디오로 보게 된 셈이었지요. 사실 또 공포영화에는 야한 장면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공포 외에 뭔가 므흣한 걸 기대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호기심도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을 겁니다.(<악령 속의 사춘기>란 영화가 기억나시는 분이라면 동감하실 거야요^^)

아무튼 그런 약간은 불순한 의도를 갖고 본 공포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토브 후퍼의 <뱀파이어>(1985)입니다. 우주에서 발견된 캡슐에서 전라의 남녀 시체가 발견되는데 지구로 그 시체들을 운반해 오자 깨어난 여자 뱀파이어가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는다는... 뭐 이렇게 요약하고 나니 별 재미가 없는 듯 하지만 당시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홀딱 벗은 요염한 미모의 여자 뱀파이어가 희생자가 북어포처럼 쭈그러들 때까지 에너지를 쪽쪽 빨아먹는 모습은 “여린 사춘기 소년에게 키스의 공포감”마저 안겨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우주 뱀파이어’라는 기발한 발상은 그 당시도 놀라웠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토브 후퍼는 사실 슬래셔 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1974)로 더 유명합니다. 두 영화 외에도 어린 마음에 서커스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줬던 <참극의 관>, 유령은 의외로 무섭지 않다는 느낌을 준 <폴더가이스트>(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연출)를 연출한, 공포영화 전성기의 최선봉을 달렸던 감독 중 한 명이지요. 시체의 냄새가 느껴지는 듯 공포를 생생히 전달하는 연출력도 압권이지만 무엇보다 저택이든, 서커스장이든, 병원이든, 우주든...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기발한 상상력이 일품이었더랬습니다. 아쉽게도 1990년 이후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금은 리메이크작의 각본이나 제작에만 참여하고 있지만 1970~80년대 공포영화 전성기의 효시를 열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인물이랍니다.




02 존 카펜터(John Carpenter, 1948~)

토브 후퍼가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으로 슬래셔 영화의 효시를 연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의 슬래셔 영화들처럼 마구 “썰고, 베고, 으깨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잔인한 장면보다 상황이나 공간감으로 공포를 주는 스타일이었지요. 그래서 진정한 슬래셔 영화의 효시로 존 카펜터의 <할로윈>(1978)을 꼽는 전문가들이 더 많습니다. 전기톱을 든 래더페이스의 공포감도 압도적이지만 이유 없이 사람을 난도질하는 살인마 집안의 큰형님은 아무래도 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클 마이어스겠지요. <할로윈>은 30만달러의 제작비로 무려 7500만달러의 흥행대박을 거두고 이후 등장하는 슬래셔 영화의 공식처럼 자리잡게 됩니다. <할로윈> 직후에 제작된 숀 S. 커닝햄의 <13일의 금요일>(1981)에 등장하는 제이슨도 그 열기에 편승해 탄생한 마이클 마이어스의 동생 격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존 카펜터는 <할로윈>의 제작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예산으로 탁월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입니다. 오히려 거대 제작사가 자본을 빠방하게 대주면 졸작을 만드는 독특한 패턴을 가진 양반이지요.(사실 이름난 20세기 공포영화의 대부분은 B급 저예산 영화들입니다.) <할로윈>도 걸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고립된 남극기지에서 벌어지는 극한의 공포를 다룬 <괴물>(1984)을 그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커트 러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 영화는 정말...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지금 다시 봐도 흉물스러운 특수효과도 압권이었지만 고립된 공간에서 표출되는 인간 군상의 심리적 묘사는 역대 최고입니다.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옥도를 정말 근사하게 그려냈지요.

사람의 몸에 침입해 신체를 강탈하는 괴생물체의 설정은 이전에도 나온 것이었지만 <괴물>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어서 이후 수많은 공포영화에서 차용이 되었으며 심지어 히토아시 이와아키의 <기생수>나 호카조노 마사야의 <견신> 같은 일본만화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냉전이 한참이던 1951년에 제작된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데 원작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원작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회상을 몇 배는 훌륭하게 그려낸 작품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숨막히는 공포의 순간마다 “둥둥! 둥둥! 둥둥” 하며 염통을 쪼그라들게 만들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테마음악이 들리는 듯하네요, 휴~! 아무튼 존 카펜터는 인간의 공포를 스크린 안에서나 밖에서나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재주를 가진 걸출한 호러 거장입니다. <매드니스>(1995)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제작된 후배들의 공포영화에서 그를 향한 오마주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 호러장르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대단합니다.


 

03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 1952~)

공포영화를 즐기지 않더라도 핏기라곤 없는 푸르딩딩한 얼굴에 잔뜩 바늘을 꽂고 나타나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헬레이저>의 핀 헤드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역사상 가장 공포스러우면서 매혹적이고 우아한 ‘귀신’인 핀 헤드를 탄생시킨 이는 감독보다는 작가로 더 유명한 클라이브 바커입니다. 클라이브 바커는 호러문학의 대가 스티븐 킹이 그의 소설에서 “호러의 미래를 보았다”며 극찬을 할 정도로 인정받는 호러작가입니다. 사실 클라이브 바커가 연출을 맡은 영화는 3편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헬레이저>를 제외한 나머지 두 영화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졸작이었다지요.

하지만 1987년 데뷔작으로 연출한 <헬레이저>만으로 그는 공포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깁니다. 소설을 쓰면서 축적한 각종 신화와 고딕 문화에 대한 지식과 수려한 문장으로 공포를 풀어내던 표현력이 <헬레이저>에서 제대로 발현되면서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철학적 경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시각적인 잔인도나 연출적인 공포감도 대단했지만 <헬레이저>는 이후의 공포영화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절대적인 세련미를 보여준 작품이었죠.

수없이 리메이크들이 이뤄지고 있는 1980년대의 공포걸작들과 달리 <헬레이저>의 리메이크 소식이 없는걸 보면 후세의 감독들이 그보다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확신과 좌절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대신 그의 단편 <한밤의 식육열차>(개봉명: 미드나이트 미트트레인)가 작년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도 개봉을 했더랬지요. 많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클라이브 바커표 시나리오를 즐길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04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 1939~)

아직도 진정한 공포영화의 최고를 꼽으라면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1973)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악마에게 빙의되는 한 소녀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가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킨 반향이 엄청났기 때문이죠.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저주를 받아 죽거나 불행을 겪은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지금 보면 좀 밋밋한 감이 있지만 영화 자체가 주는 공포도 대단합니다.

특히 악마에 몸을 빼앗긴 소녀의 얼굴이 거꾸로 돌아가서 말을 할 때는 “꼬추가 오그라들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복원된 판에서 볼 수 있었던 ‘스파이더 워크 신’이나 곳곳에 드러나는 악마의 얼굴(이를 테면 정말 잠깐인데... 거울에 살짝 비치는 악마의 희번득거리는 표정) 같은 신들도 압도적인 공포감을 선사했지요. <엑소시스트>는 1970년대 미국의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던 오컬트 붐에 편승해 엄청난 흥행과 반향을 거둡니다. 뒤이어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한 리차드 도너의 <오멘>(1976)과 함께 공포영화의 한 줄기가 된 오컬트 장르의 효시가 되었지요.

그런데 정작 이 영화를 만든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입니다. <소서러>(1977)을 제작한 후 너무 기교를 부리는 데만 신경쓴다는 평단의 혹평에 삐쳤는지 이후 그의 공포적 재능을  TV시리즈물이나 액션물, 심지어 스포츠물에다 쏟아 붓습니다.(<롤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가 바로 이 양반 영화랍니다.-ㅅ-) 간혹 공포영화도 제작했지만 졸작들이었고, “차라리 <엑소시스트> 이후에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신화로 남았었을 텐데”라는 비아냥을 듣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2006년 제작한 <버그>는 30년 동안 어디 장기휴가라도 떠난 듯 했던 그의 공포적 재능이 다시 복귀했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입니다. 작년에 개최된 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불면의 밤’에 상영된 영화 중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더랬지요. 1939년생으로 벌써 고희가 된 그의 영화 열정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05 웨스 크레이븐(Wes Craven, 1939~)

1939년생으로 윌리엄 프리드킨과 동갑에다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딴 뒤 교수를 하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영화판에 뛰어든 웨스 크레이븐은 어쩌면 20세기 후반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호러 거장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감독일 겁니다. <엑소시스트> 외에는 “찌질한” 행보를 보여준 윌리엄 프리드킨은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토브 후퍼, 존 카펜터, 클라이브 바커는 굵직한 걸작은 선보였을지언정 웨스 크레이븐만큼 필모그래피 내내 꾸준하고 왕성한 족적을 새기진 못했거든요.

게다가 그는 1996년 <스크림>으로 팔팔한 젊은 감독들도 해내지 못한 공포영화의 신천지를 개척해 내고 공포영화를 주류영화계로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가장 인기있는 호러 캐릭터인 프레디 크루거를 탄생시킨 <나이트메어>(1984)만으로도 20세기 호러거장으로 칭송받기 부족함이 없는데 말이지요. (2000년대 들어 공포영화가 주류로 올라서는 가교 역할을 이 1930년대생 감독이 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ㅅ+;)

공포영화의 전성기에서조차도 B급 영화의 대명사이자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만 열광 받던 호러장르를 주류로 끌어올린 그의 공은 대단한 것이지만 오히려 호러 마니아들은 그런 면 때문에 그를 진정한 호러거장으로 꼽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호러장르를 잘 만드는 역량을 “주류의 자본이 개입되지 않은 저예산으로 주류 사회의 모순과 폐단을 파헤치고 비틀고 꼬집는 재주” 쪽으로 비중을 두는 평론가들도 많으니까요.

아무튼 공포란 아이콘을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켜 다수의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그의 포장솜씨는 단연코 최고입니다. 그의 이름을 몰라도 프레디 크루거나 뭉크의 ‘절규’를 흉내낸 듯한 스크림 마스크를 모르는 이는 없으니까요. 그의 영화에는 A급 배우들이 등장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나이트메어>에서는 프레디에 의해 믹서기에 갈리듯 피분수를 뿜으며 산산이 분해되었던 조니 뎁의 모습하며, <스크림>에서는 전화기를 들고 “염통이 쫄깃해질 정도로 낭창한” 비명을 질렀던 드류 베리모어의 모습이 압권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대중적인 공포영화만 제작한 것은 아닙니다. <나이트메어> 이전 제작한 <언덕이 보고 있다>(1978)는 저예산 영화에다 묵직한 불쾌감을 선사하는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지만 그의 공포영화의 재능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는 숨겨진 걸작입니다. <엑스텐션>(2003)으로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받는 호러의 신성인 프랑스의 알렉산더 아야가 동명으로 리메이크해서 비평가들로부터 2006년 최고의 공포영화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너무나 대중적으로 성공해서 오히려 공포영화계에서 그의 위상이 깎인 감이 있지만 호러를 즐기는 이라면 이 장르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시발점이 된 그에게 감사해야 마땅하겠지요.(웨스 크레이븐과 더불어 대중적인 공포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톰 홀랜드를 들 수 있습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처키를 만든 이가 바로 이 양반이니까요. <나이트메어>와 더불어 <사탄의 인형>(1988)만큼 꾸준히 사랑받는 공포영화도 드물겠지요.) 




06 샘 레이미&피터 잭슨(Sam Raimi, 1959~ & Peter Jackson, 1961~)

<스파이더맨>시리즈를 감독한 샘 레이미와 <반지의 제왕>시리즈, <킹콩>이란 블록버스터를 감독한 피터 잭슨을 20세기의 기억해야 할 공포영화 거장으로 꼽는 데 의아함을 표시할 분들도 많을 줄 압니다. 하지만 <이블 데드>와 <고무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이실 분들도 많을 겁니다. 지금이야 이 두 감독만큼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감독도 없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기 전 그들은 “저예산 공포영화”의 소문난 악동들이었습니다.

먼저 샘 레이미부터 살펴볼까요. 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매력적이지만 사실 그의 공포영화 재능을 못 잊는 분들이 부지기수일 겁니다. 바로 그가 <이블 데드>(1982년)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공포물 하면 “전설의 고향” 밖에 모르던 그 시절 우리나라에 “공포영화는 이런 것이다”란 것을 보여준 전설의 호러가 바로 <이블 데드>입니다. 외딴 산장에 놀러온 청춘남녀들이 나무들의 습격을 받고 악마에게 홀려 좀비 같은 괴물로 변해가고... 그리고 새벽 3시가 되면 다시 시계가 12시로 돌아가고... 사람의 피부로 만든 악마의 서... 지금도 어디서엔가 누구의 입을 통해 수없이 회자될 명장면들이 가득한 공포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이죠.

사실 <이블 데드>는 전형적인 공포로만 가득한 영화는 아닙니다. 이후 2편과 3편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무섭고 잔인한데도 이상하게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스플래터 호러”의 전형이 또 <이블 데드>거든요. 삽으로 여자친구의 목을 날려버리는 상황이 공포스럽긴 하지만 또 딱히 불쾌하지 않은 것은 샘 레이미의 천재적인 유머성이 돋보이는 부분이지요. 불쾌함이나 역겨움보다는 유쾌한 공포감을 선사하며 <이블 데드>가 폭 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샘 레이미는 <이블 데드> 3부작을 만들던 중 <테이큰>의 무지막지한 아버지 리암 니슨이 주연을 맡았던 <다크맨>(1990)이란 또다른 걸작도 탄생시키지요. 그런데 돈벌이가 안 되었는지, 아님 실험정신이라도 발동했는지 이후 그는 장르 순회라도 하는 듯 서부극인 <퀵 앤 데드>, 스릴러인 <심플 플랜>, 심지어 멜로물인 <사랑을 위하여>까지 감독하며 흥행, 평단, 마니아들을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나중에 결과적으로는 그런 장르 순회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걸출한 오락 영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측면도 있지만 <이블 데드>의 맛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샘 레이미의 이런 행보는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지요. <스파이더맨4>를 만들기 전 몸풀이라도 하듯이 최근 <드래그 미투헬>이라는 공포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옛날에 비하면 재기발랄함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의 반짝이는 재치를 볼 수 있었던 유쾌한 공포영화였습니다.(개인적으로는 그가 블록버스터보다는 이렇듯 계속 스플래터 호러를 만들면 좋겠습니다만...)

샘 레이미에 비해 피터 잭슨의 전력은 호러마니아들을 제외하곤 생소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블 데드>에 비하면 피터 잭슨의 호러 대표작인 <고무 인간의 최후>(1987)와 <데드 얼라이브>(1992)는 공포마니아 중에서도 아주 소수의 마니아들만 열광했던 작품이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우연찮게 고등학교 때 <고무 인간의 최후>를 봤었는데 영화 속에서 사람의 머리를 횡으로 가른 후 숟가락으로 골수를 파먹는 젊은 시절의 피터 잭슨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선연하네요. 그밖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역겨운 장면으로 가득한 삐끕 중의 삐끕 호러지만 신기하게도 불쾌함보다는 유쾌함으로 다가오던 신나는 공포영화였더랬습니다.

사실 피터 잭슨이야말로 스플래터 호러의 제왕이었죠. 발칙하고, 고약하고, 엽기적이지만 “상큼발랄경쾌”하게 사지를 절단하는 스플래터 무비에서 피터 잭슨만큼 재능을 보여준 감독도 없을 겁니다. 제작된 뒤 한~~~참 뒤에 국내에 출시된 <데드 얼라이브>야말로 피터 잭슨의 이런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걸작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막 나갑니다. 좀비로 변해가는 엄마의 너덜너덜해진 피부를 정성껏 본드로 붙여주는 아들, 간호사 좀비한테 뽀뽀를 하다 통째로 입술을 뜯겨버리는 발정난 신부, 잔디 깎는 기계로 그야말로 신나게 갈리는 좀비들 등등... 뭐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장면이 한가득입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절대 불쾌하지 않고 유쾌함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죠. 이렇게 관객들에게 유쾌함을 전달하는 피터 잭슨의 재능은 할리우드로 건너가 제작한 영화에도 고스란히 발휘되어 <반지의 제왕>이라는 걸작을 탄생하게끔 합니다.




07 스튜어트 고든(Stuart Gordon, 1947~)

샘 레이미와 피터 잭슨이 음지를 떠나 양지로 옮겨 입신양명을 했다면 그들과 맞먹는 스플래터 호러의 대가 스튜어트 고든은 음지에서 줄창 머무른 저주받은 감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그의 데뷔작인 <좀비오>(1985)와 두 번째 연출작 <지옥인간>(1987)을 인생 최고의 공포영화로 꼽는 분들도 꽤 될 텐데요. 이 두 영화 역시 제대로 막 나가는 영화들이죠. 둘 다 이상한 실험을 통해 야기되는 엽기적인 신체변형과 절단을 통해 진정한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왕경태 같이 커다란 안경을 쓰고 실험에 몰입하던 B급 공포영화 전문배우 제프리 콤스의 독특한 캐릭터도 잊을 수 없구요. 생각해보면 이런 엽기잔혹물을 어떻게 중학교 때 키득거리며 재미있게 봤는지 참 그때는 비위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기괴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엽기적인 신체절단과 변형이 전매특허인 이 두 영화는 스플래터 무비의 최고 걸작으로 수많은 잔혹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두 영화에는 <소사이어티>(1989)로 풍자호러의 진수를 보여준 브라이언 유즈나가 제작자로 참여하는데 1989년 단짝과 다름없었던 브라이언 유즈나와 결별하면서부터 스튜어트 고든은 내리막을 걷게 됩니다.

공포영화보다는 SF영화 쪽으로 발길을 돌려 주류의 진입을 시도하던 스튜어트 고든은 데니스 호퍼가 기괴한 미래의 트럭배달부로 등장하는 <스페이스 트러커>(1997) 정도를 제외하면 범작들만 줄줄이 내놓는 진짜 3류 감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다시 공포영화에 집중하면서 <데이곤>(2001) 같은 걸작을 내놓기도 했고 작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스턱>(2007)은 역시 거장의 명성을 재확인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좀비오>처럼 자극적인 웃음을 선사하는 스플래터 호러가 아니라 꽤 진지하고 무거운 호러라지만 스튜어트 고든 같은 거장이 다시금 호러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지요. 




08 로이드 카우프만(Lloyd Kaufman, 1945~)

최근 핸콕이나 왓치맨들 등 까칠하기 그지없는, 영웅같지 않은 히어로들이 각광받고 있지만 정확히 24년 전인 1985년 핸콕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 나가는 안티 히어로가 있었으니 바로 ‘톡시’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청소부였던 주인공이 유독 폐기물이 담긴 탱크에 빠진 뒤 얼굴과 몸은 흉측하게 일그러지지만 가공할 파워를 얻게 되고 대걸레를 손에 든 채 세상의 악당들(특히 환경을 오염시키는)을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처단하는데 그 방법이 가히 오금이 저립니다. 두 팔을 뽑아버리는 것은 대수요, 머리 으깨버리기, 창자 뽑아버리기 등 갖은 방법으로 악당들을 통쾌하게 분해시키십니다. 게다가 그의 유니폼은 세상에! 다 찢어진 보라색 발레리나복이지요.

아무튼 전무후무한 엽기히어로 톡시가 등장하는 영화가 바로 엽기영화 공장 트로마 스튜디오의 전설을 시작하게 한 <톡식 어벤저>(1985)지요. 조잡하고 엉성할지는 몰라도 그 잔인성과 엽기성만은 말 그대로 혼을 쏙 빼놓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 접하지 못하고(당연한 건가요?+ㅅ+;;) 몇 년 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잔인하고 어이없는 장면에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어찌나 유쾌통쾌상쾌하던지... 고등학교 이후 잠시 중단되었던 B급 호러영화 편력기를 다시 시작케 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지요.

이 <톡식 어벤저>를 탄생시킨 트로마 스튜디오의 수장이 바로 로이드 카우프만입니다. 막 나가는 B급 호러거장들이 가득한 미국은 물론이고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상상력의 보고인 일본에서조차 이 양반을 능가할 악동을 없다 할 정도로 정말 제대로 된 3류 B급 호러의 대가죠. <톡식 어벤저> 외에도 사람의 목에다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는 좀비들이 나오는 <피를 빠는 변태들>, 고귀한 줄리엣을 폰센스와 동성애, 가학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변태로 바꾼 <트로미오와 줄리엣>, 좀비로 변신하는 닭들이 나오는 <폴트리가이스트> 등의 초절정 유치뽕짝 엽기하드고어들이 다 이 양반의 주도하에 트로마 스튜디오에서 탄생된 작품이죠.

하지만 카우프만이 만든 영화들이 쓰레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극단적인 말초적 자극만 추구하는 듯하지만 그런 표현을 통해 주류 사회를 비꼬는 솜씨는 가히 예술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후라이드 치킨을 좀비로 부활시켜 패스트 푸드의 위험성을 경고할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만약에 누가 100만달러를 준다면 10만달러는 영화제작에 쓰고 90만 달러는 후배를 가르치는데 쓰겠다고 말할 정도로 후배 양성에도 신경을 쓰는 감독입니다. 그 덕분에 트로마 스튜디오 출신의 재능 있는 영화감독들이 많지요. 개인적으로 최근의 B급 호러물 중 감히 최고였다 평가하는 <슬리더>(2006)를 감독한 제임스 건도 로이드 카우프만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수제자랍니다.   




09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 1940~)

지금까지 죄다 미국의 호러 거장들만 소개했는데(피터 잭슨이 뉴질랜드 출신이긴 하죠.)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의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페인의 호러 거장도 많습니다. 미국에 비해 이들의 영화를 국내에서 접하기가 어려워서 각인이 덜 된 것뿐이지 세계 호러사를 주름잡았던 거장들은 미국이 아닌 국가 출신이 더 많았죠.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감독들이 만든 공포영화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비디오로 출시가 많이 되었더랬습니다.

사실 이탈리아가 70~80년대 유럽에서 으뜸가는 호러 강국이었고 ‘지알로’나 ‘스파게티 호러’로 불리는 이탈리아만의 공포장르를 탄생시킬 정도로 공포영화의 강국으로 각광받았거든요. 덕분에 중고등학교 시절 그게 이탈리아 영화인지도 모르고 본 영화들이 꽤 되었죠. 앞서 므흣한 목적으로 빌려봤다는 <악령 속의 사춘기>도 사실 이탈리아 영화였고, 무섭기로 소문났었던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1985)나 미켈레 소아비의 <아쿠아리스>(1986)도 다 이탈리아 영화였더랬습니다.

바바 부자나 루치오 풀치, 미켈레 소아비 등 쟁쟁한 이탈리아 감독들 중에서도 최고봉은 다리오 아르젠토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수정 깃털의 새>(1969) <서스페리아>(1977) <인페르노)(1980) 등 호러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감독했습니다. 특히 <서스페리아>는 영화내내 반복되는 그 배경음악이 어찌나 음산하고 기분 나쁜지 시각이 아니라 청각으로도 사람을 이토록 무섭게 할 수 있구나 실감한 영화였답니다. 1980년대 들어 다리오 아르젠토는 미국에서 편집된 영어권 영화를 만드는데 1984년 당시 초절정 미모를 자랑하던(<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의 그녀를 기억하신다면 백배공감!) 제니퍼 코넬리를 주연으로 <페노미나>를 찍습니다. 제니퍼 코넬리가 곤충과 대화하는 신비의 소녀로 등장한 이 영화는 그닥 무섭지는 않지만 그녀 덕분에 주말의 명화에도 방영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꽤 회자된 영화였지요.

그 후 그는 <검은 고양이>(1990), <트라우마> 등의 영화들을 제작하는데 70~80년대만큼 큰 인기를 얻진 못합니다. 아무튼 다리오 덕분에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황금시대가 있었다고 할 만큼 유럽 호러영화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죠. 2000년대 들어 선배들을 뛰어넘는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스페인, 프랑스, 영국과는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좀처럼 괜찮은 신예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그가 만들어 놓은 이탈리아 호러의 공식이 너무나 확고해 그걸 깨뜨리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랍니다. 참고로 다리오 아르젠토는 퇴폐적이고 뇌살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의 아버지랍니다. <미스트리스> <트리플엑스> <랜드 오브 데드> 등에서 묘하게 어두운 매력을 보여준 아시아의 매력은 분명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 셈인 거죠^^ 




10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1940~)

현대 공포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로메로. 이 양반을 이렇게 마지막으로 뺀 이유는 “진짜 거물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식의 예우가 아니라 사실 그의 영화를 그닥 재미있게 보지 못했다는 이유가 클 겁니다. (공포영화사적으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올려야 마땅할 알프레드 히치콕을 뺀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기도 하죠.) 사실 한 블로그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올리는 리스트에 자기 이름이 빠졌다고 이 양반들이 화내실 리도 없고(이분들의 팬들은 그럴 수도 있겠군요.) 매번 평론가들을 비롯한 누군가의 리스트에 꼭 감초처럼 등장하실 분들이라 제 리스트에서조차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했으나 조지 로메로만큼은 공포영화사에 무척 중요한 인물이라 뺄 수가 없네요.(히치콕 옹도 중요도로 따진다면 로메로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지만 이 리스트가 70~80년대 공포전성기의 거장들 위주로 짠 것이라 뺐다는 것을 감안해주시길.)

조지 로메로는 익히 알려있듯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3부작으로 현대 좀비 영화의 공식을 창조한 감독입니다. 1968년 우리 돈 1억원 정도의 “경악할만한” 제작비로 만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인정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게 되는데요. 당시로선 살아있는 시체라는 설정이나 잔인한 폭력성 등도 센세이셔널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좀비들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해가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풍자해냈다는 점이 더 큰 평가를 받았답니다. 이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2-시체들의 새벽>(1978)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3-시체들의 날>(1985)을 내놓으면서 “좀비영화=로메로”란 공식을 세웠고, 이후 좀비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공포영화들이 그의 공식을 차용해 제작됩니다. 일련의 법칙이라고도 할까요.

2000년대 들어 잭 스나이더 같은 재능 있는 감독들이 <새벽의 저주(2004) 그의 좀비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더 신화적인 존재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2005 <랜드 오브 데드>를 직접 감독하며 열정적으로 다시 좀비영화 제작에 힘을 쏟고 있는데 거장의 복귀로 환영을 받았으며 여전히 신랄함과 재미가 있던 <랜드 오브 데드>에 비해 <다이어리 오브 데드>(2007), <데이 오브 더 데드>(2008)는 그 힘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랜드 오브 데드>는 생각할 줄 아는 ‘좀비 사피엔스(?)’도 나오고 참신한 부분이 여전히 많아 역시 좀비영화의 지존답다 생각했는데 두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해서 평가를 내리지 못하겠네요.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사에 길이남을 이혁수 감독
사실 이 분을 빼고 그냥 포스팅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이혁수 감독이 만든 <여곡성>(1986)만큼 초강력호러포쓰를 선사한 공포영화도 있을까 해서 ‘아차상’ 개념으로 살짝 이혁수 감독도 소개해 봅니다. 언젠가 주말의 영화인가에 방영되어 수많은 시청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여곡성>이야말로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무섭게 본 공포영화로 손꼽을 겁니다.

그... 피눈물을 흘리며 눈 희꺼덕 뒤집어진 마님의 모습은 정말 꿈에 나올까 두려웠더랬지요. 그 외에도 영감님께서 맛나게 드시려던 국수가 갑자기 우글거리는 미꾸리들로 변한다든지, 육감적인 며느리의 상반신에서 바이오맨 레이저 쏘듯 광선이 뿜어나오며 귀신을 물리친다든지... 등등 기발하게 공포스러운 장면들은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지요. 뭐 사실 이 이후 이보다 더 잘만들었다 평가받는 한국공포영화도 제법 되지만... 많은 이에게 인생 최고의 공포영화로 남아있을 전설적인 공포영화가 바로 이 <여곡성>이랍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혁수 감독은 1960년대 액션영화를 주로 만드시던 감독인데 <여곡성> 외에는 딱히 연출한 공포영화가 없다는 것도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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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루박멸탐구생활 우쓰라 | 스틸 및 사진 출처 : imdb 및 각종 해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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